분노 유발의 심리학
5. 원칙 주의자 또라이
말이 안 통하고 규칙을 맹신하는 사람 (강박성 인격 유형)
원칙주의자 또라이(전문용어로는 강박성 인격 유형)는 규칙에 목숨을 건다. 목숨만큼 중요하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지켜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다! 규칙이라 불리는 것은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들고 간 십계명보다 더 단단한 돌에 새겨진 것이다. (사실 원칙주의자 또라이의 기준으로는 십계명도 너무 빈틈이 많은 규칙이다. 자고로 규칙이라 부를 정도가 되려면 예외 규정과 보조 규정까지 포함해서 석판이 한 327개 정도는 필요할 텐데 말이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는 안전을 추구하며, 규칙이 그 안전을 보장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두 규칙이 상충할 때가 원칙주의자의 최대 위기다. 그 상황에서는 어떤 규칙을 우선 적용해야 할지 정해둔 규칙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는 규칙을 맹목적으로 준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원칙주의자를 상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처럼 맹목적 준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규칙에 따라 원칙적인 삶을 살아보니 너무도 효율적이어서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는 평소 활동반경을 벗어나는 새루운 경험과 발견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여행도 반드시 안전한 단체 관광을 택한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길을 나서야 하면 최소 하나 이상의 내비게이션과 배터리 방전을 대비한 주변지도까지 꼼꼼히 챙긴다. 낯선 나라에 가면 사람들이 외국어로 말할 것이고, 어쨌든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 그들에게 길을 물으며 찾아다니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말이 통하더라도 지역마다 정서가 다르므로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에 더 의존한다.
매사가 정확해야 하고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살다 보니 원칙주의자 또라이는 어디를 가도 유머 감각 없는 진지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이들도 유머를 구사할 줄 알고 농담도 제법 던지지만, 대부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비꼬는 용도다. 자학적인 농담도 웬만큼 하는 편인데, 이는 혹시라도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 재밌으라고 그렇게 했던 척하기 위해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니 말이다.
어쩌다 원칙주의자 또라이가 되었을까?
이번에도 다른 답은 기대하지 말자. 문제의 뿌리는 역시나 어린 시절에 있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로 성장한 사람은 아주 일찌감치부터 부모와 마찰을 빚기 시작한다. 이때의 부모는 아주 엄격하거나, 혹은 걱정이 지나쳐 아이를 과보호하거나 둘 중 하나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청결 교육이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의 배변 훈련은 언제부터 시키는 것이 가장 적당할까? 요즘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평균보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안달복달한다. 아이에 따라 어떤 부분은 발달이 좀 늦을 수도 있는데, 참고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병원부터 데려간다.
이는 대소변 가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러운 것은 전부 질색이다, 엄격한 부모는 청결 때문에, 걱정 많은 부모는 아이가 혹시라도 위험한 병균에 옮을까 봐 더러운 꼴을 못 본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같다. 아이는 세상을 탐구하지 못한다. 엄격한 부모는 벌을 주고, 과보호하는 부모는 계속 걱정거리를 늘어놓으면서 아이에게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매를 맞거나 야단을 맞거나 징징대는 부모의 한탄을 듣고 싶은 아이는 없기 때문에 아직 말도 못 배운 나이 때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부모가 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애쓴다. 이와 더불어 아이는 규칙을 맹목적으로 지키면 부모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운다.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벌도 없고 하소연도 없다. 하지만 그 규칙의 폭이 좁을수록 아이가 훗날 자라서 원칙주의자 또라이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세상 모든 것에 규칙이 있고, 심지어 곰인형을 가지고 놀 때도 규칙이 있기 때문에 ('안돼. 벽 쪽으로 붙여놔. 침대에서 떨어지면 더러워 지잔니!'와 같이) 아이가 독립적으로 경험을 쌓을 기회는 거의 없다. 아이가 실제로 곰인형을 침대에서 떨어뜨려서 화가 난 엄마가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되는 인행을 세탁기에 집어넣는 바람에 아이는 좀비가 된 인형을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아이에게 독립적 경험의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형이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은 당연히 다 아이의 잘 못이 된다. 엄마 말을 잘 들었으면 인형은 절대 좀비가 안 되었을 테니까. 그날의 트라우마는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래도 그 정도면 다행이다. 좀비가 되었을 망정 인형은 곁에 남았으니까. 만일 집 밖에서 인형을 떨어뜨렸다면 엄마는 길 바다의 먼지가 묻은 인형을 곧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규칙을 어겼을 때 받는 또 하나의 제재 조건을 배우게 된다. 규칙을 어기면 곧바로 물건을 빼앗기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칙주의자의 권리는 규칙 준수와 합쳐진다. 규칙을 어기면 권리도 빼앗기고 물건도 빼앗긴다.
물론 원칙주의자 또라이에게도 좋은 점은 있다. 싸움이나 시위, 논쟁 등에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보다 알차게 일하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규칙의 정당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따르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하지만 그 규칙을 만든 자가 인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끌고 간다면 맹목적으로 그 규칙을 따른 자에게도 큰 책임이 따를 것이다.
원칙주의자 또라이게는 어떻게 대처할까?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주의 자가 규칙을 지키는 이유는 안전을 위해서다. 따라서 그가 무의미한 규칙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이런 질문으로 그의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라거나, "그 규칙을 고수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요?"처럼 말이다.
이런 질문은 원칙주의자 또라이가 규칙과 전혀 무관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규칙 뒤에 숨으려 할 때 결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른 반대되는 규칙을 들이밀면서 이것이 먼저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므로 해당 내용에 관해 원칙주의자 또라이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비로소 이점으로 작용한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를 물리치려면 그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무기와 똑같은 논리를 이용해야 한다. 이들은 규칙 자체에 관한 토론을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다른 규칙을 (혹은 그보다 더 시급한 규칙을) 제시해서 원칙주의자도 안전함을 느끼고 대안의 행동방식을 따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규칙을 어겨야 할 상황만 아니라면 대체로 사교적이고 순해서 관계를 유지하기 좋은 사람이다. 게다가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원칙주의자 또라이는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킨다. 약속을 깨는 것 또한 규칙을 어기는 일이므로.....
<분노 유발의 심리학 책 中> -저자 클라우디아 호흐 브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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